추석이 지났는데도 이어지던 늦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고 상쾌하다. 분당 중앙공원에 꽃망울을 터트린 꽃무릇이 산책하는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꽃무릇은 통상 개화 후 열흘 정도가 절정기다.
나무 아래에서 무리를 지어 핀다고 해 '꽃무릇'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게 됐다. 꽃무릇은 수선화과 여러해살이식물이며 알뿌리가 마늘과 비슷하게 생겨 ‘돌처럼 단단한 마늘’이라는 뜻의 ‘석산(石蒜)’이라고도 불린다.
잎도 줄기도 없이 땅속에서 여름을 보낸 꽃무릇은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9월 중순이 되면 신기하게도 연둣빛 꽃대가 올라온다.
가늘고 긴 꽃대 끝에 길쭉하게 꽃망울을 맺다가 붉은빛이 강렬하고 화려한 꽃을 하나 둘 터트리는 모습이 마치 가을 공원 숲에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모습 같다. 10월까지 숲 곳곳에서 피던 꽃이 진 후에야 잎이 나다 보니 ‘꽃은 잎을, 잎은 꽃을 그리워한다’는 꽃무릇은 그리움과 아련함을 품은 꽃으로 표현된다.
사실, 이파리 없이 피는 꽃은 많다. 이른 봄에 피는 꽃은 대부분 잎보다 먼저 꽃이 피고 꽃이 질 무렵 잎이 돋아난다. 그러나 꽃무릇처럼 꽃과 잎이 아예 만나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꽃무릇을 ‘상사화’라고도 부르는데 사실 꽃무릇과 상사화는 다른 꽃이다.
꽃무릇과 상사화는 모두 '잎과 꽃이 만날 수 없다'는 것은 같지만, 꽃무릇은 추석 전후 9월 중순~10월 초 피는 가을꽃이고 상사화는 6~7월 피는 여름꽃이다.
상사화는 3~4월 잎이 먼저 나오고 6~7월 여름에 꽃을 피우는 반면 석산은 꽃이 먼저 핀 뒤 잎이 늦가을 11월에 자라 월동한다. 꽃은 상사화가 분홍색인 반면 석산은 강렬한 붉은색으로 수술이 꽃잎보다 길게 나온다.
빨간 빛깔이 화려하고 매혹적인 꽃무릇은 뿌리에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어 조상들은 사찰과 불화를 보전하기 위해 꽃무릇을 활용했다. 목조건물인 절의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칠하는 단청이나 탱화를 그리는 안료에 독성이 강한 꽃무릇의 뿌리 성분을 섞어 사용하면 좀이 슬거나 벌레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앙공원 산책길뿐만 아니라 맨발 황톳길을 따라서도 꽃무릇이 피어 있다. 풀벌레 소리와 함께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맨발 황톳길을 걸으면서 건강도 챙기며 힐링시간도 갖기 최고의 때가 지금인 듯하다.
취재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